[리뷰][괴물] 박정제: 사슴의 울음소리를 듣는 자

(한주원 & 이동식: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서 Part 1 / Part 2)

 

※ 이 글은 심리학자인 러시아 팬이 작성한 리뷰의 번역본입니다. (Thanks to kseniyagreen for writing such a wonderful review.)

 

박정제는 드라마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캐릭터이고, 전체적인 비극적 스토리의 핵심 인물이다. 거의 모든 판타지물에는 이렇게 끝에 가까워지면 가장 중요한 비밀을 드러내는, 조용하지만 이상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조금은 신비로운 만양 세계에선 박정제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이것은 그의 역할로도 강조된다. 그는 서고 담당자이자 비밀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이 타이틀에는 씁쓸한 아이러니가 깔려 있다. 그가 감추고 있는 비밀은 그 자신의 의식에서조차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지키고 있던 서류들은 아무런 통제 없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다.

 

 

사슴 농장에서의 어린 시절

 

그의 전체 스토리는 맨 끝에 가서야 알 수 있지만, 정제의 상황은 주원과 아주 흡사하다. 기본적으로 두 인물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존재한다. 정제는 주원과 마찬가지로 자기 부모에 의해서 망가졌다. 두 사람에게 실종은 개인적인 이슈고,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제의 상황은 좀 더 복잡하다. 우리는 명백한 폭력에 대해선 대응할 수 있고, 주원은 아버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잘 터득했다. 그러나 보호를 가장한 폭력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모든 방어를 우회하여 인격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한다.

 

처음에 도해원은 과잉보호하는 어머니처럼 등장한다. 그녀는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아들의 인생에 자신을 맞춘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제가 마침내 그녀와 결정적으로 대립했을 때 그녀는 냉소적이고, 잔인하고, 눈빛에 최소한의 따뜻한 모성도 느껴지지 않는, 다른 얼굴을 보인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도해원일까? 둘 다 맞고, 둘 다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은 타인에게 진정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 그녀가 보이는 모든 모습은 살아있는 감정과 차가운 계산과 교묘한 연기의 혼합이다. 그리고 그녀 자신조차도 그걸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진묵과 가까워졌던 이유다. 나는 그들의 결합이 우연이 아니라는 내용의 글을 이미 쓴 적이 있다. 진묵은 도해원도 가지고 있는 추한 돌연변이적 성질의 최종 진화형이다. 그리고 둘 다 어떤 의미에선 자기 자식을 목 졸랐다.

 

이러한 과잉보호와 거부의 교차 행위는 유독한 부모의 큰 특징이고, 그 두 가지는 같은 본질을 공유한다. 도해원에게 아들은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에게 연결된 손이나 다리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직 이 역할일 때만 가치가 있다. 도해원의 모자 관계에서의 역설은 아들이 그녀의 전부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그녀의 유산이고, 남자(성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이런 여성의 아들은 남편을 대신한다)고, 자아 확인의 수단이고, 때로는 그냥 방해받기 싫어서 옷장에 넣어둘 수 있는 물건이다.

15회에 도해원은 한기환처럼 가면을 벗는다. 그녀의 고백은 마녀의 주문에 가깝긴 하지만 말이다. 그녀는 아들의 얼굴에 대고 모성애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사슴 농장에 가두었던 과거를 떠올린다. "아직도 사슴 우는 소리 들리니?" 이 한 마디는 마치 주문처럼 정제를 마비시키고, 그가 힘들게 얻은 용기를 빼앗아버린다. 그 말이 그를 어린 시절의 악몽으로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린 시절의 심리적 트라우마는 언제나 인격의 한 부분을 트라우마적 상황에 '동결'시킨다. 주원이 계단 위에 '동결'되어 있었다면, 정제는 사슴 농장에 남았다. 어린아이는 자기 힘만으로 자아를 확립할 수 없고, 어른이 만들어준 정신적 기반이 필요하다. 그래서 외로운 아이는 공허해 보인다. 이런 아이들은 그 공허함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서 종종 상상 속 괴물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 괴물들은 사라진 것에 대한 흐릿하고 형체 없는 두려움을 형상화한 것이고 끔찍할 수 있지만, 공허함은 그보다 더 끔찍하다. 사슴 울음소리는 어린 정제에게 아마도 이런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이 같은 낯선 소리는 어린아이에게 무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성은 정제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사슴 농장은 무서운 곳이면서 동시에 그와 동식의 아지트였다. 사슴의 이미지는 그를 괴롭히면서 동시에 유혹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여가 시간을 온통 그림 그리기에 할애한다.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사슴 울음소리는 그의 텅 빈 세상을 채워주었다.

 

그런데 이 죽은 듯한 세상에 동식이 나타난다. 공허에 빠진 아이에게는 처음으로 손을 뻗어준 사람이 인생의 전부가 된다. 삶의 근원이자 존재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또한, 동식은 타인에게 '아빠이자 엄마'가 되어주는 것, 즉,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가족을 만들어주는 것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강하고, 친절하고, 밝고, 생기 넘치는 그는 정제가 꿈만 꾸었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의 옆에서 그의 온기로 따뜻해진 정제는 스스로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는 20년이 지나서도 그가 동식과 대화할 때마다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제가 유연을 사랑했을까? 확실히 그는 그녀를 정말로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와의 오랜 이별을 앞둔 만남에서도 동식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식이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는 것이 그에게는 왜 그렇게 중요할까? 그저 나의 추측일 뿐이지만, 정제는 동식이네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이렇게 따스하고 밝게 살아 숨 쉬는 세상의 일부가 되는 것을 무엇보다도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유연 역시 그에게는 반사광처럼 빛나는 존재였다. 아마도 그래서 그는 그가 가장 바라는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허락과 승인을 얻기 위해 동식이 그 사실을 알기를 그토록 원했던 것이다.

 

정제는 사랑을 갈구했지만, 정작 자신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사랑은 자아가 없는 사람에게 문제가 된다. 손이나 발이 어떻게 '나'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겠는가? 정제의 어머니는 그가 자기 의지를 가질 수 없도록 막았고, 그에겐 저항할 만한 힘이 없었다. 스무 살의 정제는 다정하고 순하지만, 어린 애처럼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재앙

 

"티끌 모아 태산.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동식은 이 말을 두 번 이상 반복한다. 그리고 이건 드라마에서 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묘사해주는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악은 한기환의 말처럼 그렇게 괴물 같은 범죄는 아닌, 하나의 '실수'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실수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앙을 초래한다.

 

그건 정제도 마찬가지였다. 나쁜 결정의 연속으로 그는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잃었다. 그가 정말 불운했던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결정은 우연이 아니라 그의 이기심과 나약함의 산물이었다. 그는 이기심 때문에 유연과 말다툼을 했고, 그 때문에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는 아무도 없는 황량한 길에 홀로 남겨졌다. 그런 뒤에 정제의 그 유아적인 성격은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술과 약으로 억누르는 행위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미 완전히 부적절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 만일 유연이 그의 차 앞에 뛰어들었다면, 그는 아마도 직접 유연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정제의 가장 큰 실수는 유연의 시신을 발견한 뒤 경찰도 아니고, 앰뷸런스도 아니고, 동식도 아니고, 그의 엄마를 불렀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는 정말로 악마와 거래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제에게 상황이 대단히 심각해 보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일 정제가 유연을 죽였다는 것이 알려졌다면, 그는 체포 이상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유연을 잃은 상태에서 동식마저 영원히 잃을 것을 각오해야 했을 것이고, 이건 정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 내가 죽을까? 내가 죽어?!" 8회에 그는 어머니가 다시 한번 동식을 욕하자 이렇게 소리친다. 그리고 이건 정제가 정말 강한 감정을 표출한 아주 드문 경우 중 하나였다. 그에게 동식을 잃는 것은 죽음과 같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거의 사라지는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의 공허로 되돌아가는 것 말이다. 정제가 가져간 기타 피크가 동식의 인생에서 그토록 운명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제를 지표면 위에 머물게 한 그들의 유대감은 결국엔 동식을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위해 지옥으로 내려가 자기 세상을 파괴하는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책임을 감내하는, 주원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사실 정제에겐 불가능한 것이었다. 정제는 아이처럼 행동한다. 그는 고통, 벌어진 상황에 대한 자각, 심지어 기억 그 자체로부터도 도망쳐 버린다. 씁쓸하고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정제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살인에 대한 자각에서 벗어나려다가 말 그대로 진짜 살인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의 유약함이 아니었다면, 유연의 시신은 바로 발견되었을 것이고, 동식의 삶은 그토록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발생한 진묵의 모든 희생자 역시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거대한 악의 피라미드는 한 사람의 유약함 위에 세워졌다. 결코 악마가 아닌, 사람에 의해서 말이다.

 

 

반쯤 잠들어 있는 삶

 

재앙이 벌어진 후 박정제는 몇 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만양으로 돌아온다. 그는 안정적이고 차분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제가 혼자 있을 때는 어린 시절 그에게 스며든 그 공허함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괴물'의 모든 이미지는 훌륭한 디테일을 갖추어 창조되었다. 모든 캐릭터는 자신의 개성을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제스처로도 표출한다. 예를 들어서 한주원은 로봇(혹은 살아 있는 조각상)처럼 언제나 직선적이고 제한된 움직임을 보인다. 동식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탄력이 있다. 재이는 종종 새처럼 머리를 어깨 쪽으로 기울이며 세심하게 듣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정제는 최면 상태에 빠진 것처럼 머리를 뒤로 젖힌 모습을 두 번 이상 보인다. 반쯤 잠들어 있고, 반쯤 깨어 있는 상태. 정제의 인생에는 전부 이 우유부단함이 깔려 있다.

 

그에겐 가족이 없다. 인생의 목표도 없다. 직장에서도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사슴을 그리는 것 외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사슴의 이미지가 언제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사슴 울음소리라는 소재는 특별하고 거의 신비롭기까지 한 의미를 지닌다. 유연은 마지막으로 집을 나설 때 사슴 울음소리를 듣는다. 정제는 유연을 치기 직전에 사슴을 본다. 그리고 바로 그 사슴 농장에서 진묵은 피해자들의 시신을 파묻는다. 그러므로 정제가 사슴 울음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은 사건을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정제 자신이 반쯤 죽어있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치 그의 일부가 이미 죽은 자들의 목소리 사이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제가 이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사슴의 이미지는 그의 개인적인 악몽, 흐릿하고 어렴풋한 죄책감과 관련이 있지만, 어떤 순간들에서는 그가 사슴에 매료되어 있기도 하다는 것이 보인다. 특히 어머니와 대화할 때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교묘하게 타인을 조종하는 건 도해원뿐만이 아니다. 정제 역시 자신의 '비정상성'을 카드로 활용해서 어머니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슴 설화'를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운 듯이 이야기한다. 가장 아끼는 스토리, 제일 좋아하는 무서운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이미지들은 정제에게 그의 범죄를 상기시키기보다는 추악한 현실을 신화로 만들어 그에 대한 자각에서 도피하도록 돕는다. 지긋지긋한 외로움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이한 괴물을 만들어내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사슴의 이미지는 죽은 유연의 이미지를 흐릿하게 한다.

이동식은 그의 비밀스러운 세계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다. 정제와 동식의 관계는 의존적 관계의 대표적 사례고, 정제의 어머니에게 하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이동식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어머니 귀한 아들 박정제는요, 내가 붙잡고 있는 게 아니야. 정제가 나한테 매달려 있는 거예요. 정제는 내가 놓으면 끝이야."

 

그리고 이 대사에서 우리는 그의 친구로서의 감정이 지쳐버린 연민의 감정으로 크게 변화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정제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이기적으로 동식에게 매달린다. 그리고 동식은 그를 밀쳐내지도 못하고, 자신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친구에게 안겨주며 압박하지도 못한다. 그는 정제에게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이 유연에 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각성

 

동식이 여동생의 시신을 찾은 후 정제의 무서운 이야기는 현실이 되고,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거울 신에서 우리는 정제가 기억과 함께 묻어버린 자신의 살아있는 일부를 되찾기 위해 스무 살의 자신에게 손을 뻗으려 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하고, 진짜로 이 사건을 파헤칠 용기도 갖지 못했다. 그는 주원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보았을 때 딱 한 번 조금 마음을 연다.

 

정제를 구원하는 건 동식이 아니라 주원이다. 그는 정제가 어머니의 비서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돕고, 동식의 지하실로 보내서 두 사람이 자신의 두려움과 직면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제를 정신병원에서 빼내서 체포한다. 그럼으로써 동식과 마찬가지로 정제에게도 치유의 끝을 선사한다. 아마도 그건 주원이 법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자신이 부모로 인해 망가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상처 입은 아이가 또 다른 아이를 도운 것이다.

 

동식은 더 이상 정제의 치료제가 될 수 없다. 그 치료제가 마약으로 변질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풀 수 없고 오직 끊어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매듭으로 묶여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지하실 신에서 이 연결이 어떻게 끊어지는지 볼 수 있다.

 

동식은 여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모든 선이 정제를 향할 때 그는 그것에 대한 대화를 마지막까지 미룬다. 아마도 한주원의 결단력이 아니었다면, 이 대화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대화는 두 사람 모두에게 고문이었다.

 

우리는 41세의 이동식이 젊은 정제를 취조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것은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정제의 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면서 동식의 심정을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남상배의 위치에서 용의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그리고 그는 눈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애써서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고, 정제로부터 실제로 자백을 끌어낸다.

 

나는 동식이 어떤 경우에도 정제를 죽일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는 해머를 내리쳐서 그들의 우정을 죽인다. 정제에게 그것은 거의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오직 동식이 여전히 그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에겐 진실을 밝혀내는 것을 도와야 할 임무가 있다.

 

그래도 그 확실함은 정제에게 힘이 되었다. 정제의 내면을 갉아먹으면서 어떻게 해도 닿을 수 없던 내면의 고통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것에 대해 뭔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자기 죄의 일부라도 속죄하는 것. 심지어 정제는 어쩐지 더 곧고 자신감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를 대할 때 어른처럼 행동한다. 비록 그 새로운 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어머니가 그의 의지를 마비시키는 걸 보게 될 정도로 여전히 미약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재이는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한다. "죗값, 받을 거지? 꼭 받아야 돼."

 

정제는 이미 지옥을 겪고 있으니, 언뜻 들으면 재이의 말이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그가 고통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죽음으로 고통과 책임에서 도망치지 말라는 것. 삶을 반드시 감내해야 할 형벌로 받아들이라는 것. 그러다 보면 삶이 더 이상 형벌이 아닌 날도 올 거라는 것.

 

마지막에 자신의 실수 때문에 어머니가 저지른 모든 악행을 깨닫고 무너지며 고통받는 정제의 모습은 무거운 뒷맛을 남긴다. "감당할 수 있을까? 박정제가?"

 

도해원에게 이렇게 묻는 동식의 눈에는 고통과 의구심이 보인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도소에서 1년을 보낸 시점에도 정제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이건 좋은 징조다. 그는 재이에게 죗값을 받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 또한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정제의 창조적 재능과 그림 솜씨에서 희망을 본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안엔 그의 재능을 발전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들의 가치를 독점하려는 욕망으로 그의 모든 자아실현을 차단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와 강제적으로 분리된 정제는 숨 쉴 수 있고, 사슴 이외의 것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주원이 보호자로서 자아를 찾은 것처럼 정제는 예술가로서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삶에서 잃어버린 얼굴들, (그에게 그토록 익숙했던) 공허 속에서 잃어버린 이미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맞다. 정제의 희망은 흐릿하다. 그렇기에 그는 엔딩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희망은 분명히 존재하고, 주원과 동식의 상황과는 달리 정제의 희망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안에 있다. 만일 그에게 이 불꽃을 살려낼 힘이 있다면, 그는 살아갈 것이다.

 

Park Jung Je - the one who hears the cry of a deer